ㆍ1조마리 이상… 무게 2㎏
ㆍ분포 유형 따라 체질 영향
ㆍ‘세컨드 게놈’ 존재감 주목
인간의 몸속에 1만종이 넘는 각종 미생물이 살고 있는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미생물의 무게를 합하면 2㎏에 달한다. 과학자들은 미생물의 규모를 밝혀낸 데 이어 미생물이 인간의 건강과 질병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개인마다 다른 신체적 특성은 미생물에 의해 결정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 내 몸속은 미생물 동물원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지난달 14일 ‘인체 미생물 군집 프로젝트(HMP)’ 1차 작업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결과는 세계유명저널인 ‘네이처’에 2개의 논문으로 실렸다. 미국의 국제저널 ‘공공과학도서관저널(PLoS)’에도 10편 이상의 논문이 실렸다. 전 세계 80여개 연구소에서 200명의 연구진이 참여한 거대프로젝트다. 연구진의 이름과 소속을 소개하기 위해 논문의 마지막 세페이지가 할애됐을 정도다.
사람의 장 속에 사는 박테리아인 ‘Enterococcus faecalis’의 모습이다. HMP프로젝트는 지난 13일 이 박테리아를 포함해 인체 미생물 유전자 지도를 완성했다. 사진 | 미국 농무부
미국 국립보건원은 이 프로젝트에 지난 5년간 약 2000억원을 투입했다. 연구팀은 미국인 242명의 코·피부·입·소장·질 등 15개 신체 부위에서 박테리아 바이러스를 채취해 분석했다. 15개 신체 부위는 체내에서 미생물이 주로 서식한다고 알려진 곳이다.
분석 결과 사람의 몸에 사는 미생물 종류가 1만종이 넘었다. 이제까지 몇백종에 불과할 것이라는 추측이 무참히 깨졌다. 마릿수로 따지면 1조마리 이상이었다.
인체미생물의 유전자 개수는 인간 유전자의 360배에 달했다. 무게로 따지면 약 2㎏이다. 내 몸속 미생물의 ‘존재감’이 2㎏이나 된다는 말이다.
인체 미생물 군집 프로젝트(HMP) 연구진은 1차 연구결과를 기반으로 2차 연구에 돌입한다. 이는 인간의 질병과 건강에 관련된 미생물 연구다. 이제까지는 비만이나 아토피 등에 대해서만 개별적 연구가 진행돼왔다. 연구진은 인간 체내 미생물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미생물과 건강과의 연관성을 총체적으로 연구하겠다는 것이다.
■ 미생물이 개인의 특성까지 좌우
2003년 인간게놈프로젝트 결과가 공개되기 전, 인간은 이 프로젝트가 인간이 다른 생물에 비해 고등한 능력을 가진 이유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인간이 가진 30억개의 염기서열을 모두 해석하는 프로젝트였다. 분석 결과 인간의 유전자는 2만~2만5000개였다. 과학자들이 예상한 것보다 적었다. 인간보다 단순한 동물로 꼽히는 파리(2만개)나 꼬마선충(1만9000개)과 그 수가 별반 차이나지 않은 것이다.
이후 과학자들은 인체의 미생물에 관심을 가졌다. 유전자 수는 비슷하지만, 체내에 서식하는 미생물에 따라 인간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있다는 연구가 속속 발표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과학저널 ‘네이처’는 “우리 몸에 있는 두번째 유전체, 게놈에 주목하자”고 제안했다. 이를 ‘세컨드 게놈’이라고 하는데, 우리 몸에 사는 미생물의 유전정보 전체를 말한다.
인체와 공존하며 살아가는 미생물은 생각보다 막강하다.
어떤 사람은 물만 먹어도 살찌는데, 어떤 사람은 야식을 먹어도 빼빼 마른 이유가 무엇일까. 과학자들은 장 내 미생물의 종류 때문에 이 같은 차이가 발생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
2011년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 연구팀은 지난해 5월 장 속 미생물의 유형에 따라 사람을 세종류로 나눌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루미노코커스(Ruminococcus)라는 미생물이 주로 많은 유형의 사람은 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고, 박테로이데스(Bacteroides)라는 미생물이 많은 사람은 빼빼 마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생활습관에 따라 몸속 미생물의 분포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어린시절 흙장난을 많이 한 어린이와 깨끗한 데서만 자란 어린이는 체내 미생물이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어린이와 제왕절개로 태어난 어린이의 미생물 분포를 분석하면,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어린이의 세컨드 게놈이 엄마와 더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한국인과 미국인의 인체미생물 분포는 다를 수밖에 없다. 생활환경과 습관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1100명의 쌍둥이를 대상으로 세컨드 게놈을 연구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쌍둥이는 유전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이들의 차이점은 미생물 때문일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인에게만 특이하게 존재하는 세컨드 게놈의 존재가 곧 밝혀질 예정이다.
- 경향신문 목정민 기자 mok@kyunghyang.com (2012. 7.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