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수렵채집과 현대도시 생활, 장내미생물 많이 다르네
탄자니아 하드자 부락인과 이탈리아 도시인 장내 미생물 비교
독일 등 연구팀 “장내 미생물은 생활환경 적응 공진화 파트너”
» 뿌리 식물 음식을 굽고 있는 하드자 부락의 여자들. 사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회(MPG), Alyssa Crittenden
'원시 수렵채집과 현대 도시 생활처럼, 다른 생활방식에선 장내 미생물 생태계도 확연히 다르다.’
구석기의 수렵채집 원시인처럼 생활하는 아프리카 원주민과 현대 문화권에서 사는 이탈리아 도시인을 비교했더니 장내 미생물군집에 큰 차이가 나타났다. 이는 생활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기주(사람)와 장내 미생물이 ‘공진화(co-evolution)의 협력’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고 연구자들은 풀이했다.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연구자를 중심으로 한 국제 연구팀은 사람의 장내 미생물이 서로 다른 생활환경에서는 얼마나 다른지 살피기 위해 원시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탄자니아의 하드자(Hadza/Hadzabe) 부락인과 이탈리아 도시인의 장내 미생물을 비교해 분석했다. 연구 논문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최근 발표됐다.
연구팀은 장내 미생물과 사람의 '공진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와 관련해 논문 서두에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인간의 장내 미생물은 기주[사람]의 영양, 대사, 병원균 저항성과 면역 기능에 매우 중요하며, 식이, 생활방식과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기주와 미생물군집(microbiome)은 한데 어울려 ‘초유기체(supra-organism)’라 불려 왔는데, 둘의 조합 활동이 자연선택의 공동대상이 되며 적응을 위한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인간 개체군 간에 나타나는 장내 미생물 차이를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인간의 유전과 대사 잠재력의 한계를 탐구하고, 장내 미생물과 기주의 공진화(co-evolution)가 우리의 생리적 유연성과 환경 적응력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탐구할 수 있다.”
연구팀은 ‘지구에 남은 마지막 수렵채취인’으로 알려진 탄자니아 하드자 부락의 27명(8-70세, 평균 32세)과 현대 문화 생활을 하는 이탈리아 도시인 16명(20-40세, 평균 32세)의 대변 시료를 수거해 그 안에 든 모든 디엔에이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장내미생물 종의 다양성과 미생물군집 규모 등을 비교했다. 또한 이미 다른 연구팀이 발표한 아프리카 농촌 사람들의 장내 미생물 특성과도 비교했다. 하드자 부락인의 장내 미생물 분석은 “최초로 이뤄진 수렵채집인 장내 미생물의 특성 규명”이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연구팀은 자평했다.
“하드자 부락인들은 지금 시대에 살면서도 인류 진화 연구의 대상이 되는 주요 지역에 거주하며 원시인류 조상이 이용했던 것과 비슷한 자연자원을 얻는 생활을 한다. 그래서 하드자 부락인의 생활방식은 구석기 인류의 생활방식과 아주 비슷하다고 여겨지고 있다.”
이번 논문의 분석 결과에서는 하드자 사람들이 이탈리아 도시인에 비해 훨씬 더 다종다양한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지닌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들의 장내 미생물 중에는 소화하기 힘든 억센 섬유성 식물 음식을 처리하는 데 유용한 것도 많아 그런 음식에서 될수록 많은 에너지를 얻어낼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막스플랑크연구회(MPG)가 낸 보도자료에서, 제1저자 슈테파니에 슈노르(Stephanie Schnorr) 연구원은 ‘산업화한 나라에 나타나는 비만, 당뇨, 대장암 같은 몇몇 질병은 장내 미생물 다양성의 감소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독특하게도 하드자 부락에서는 장내 미생물의 종 구성이 남녀 성별로 차이를 보였다고 연구자들은 전했다. 하드자 남자들은 주로 동물을 사냥하고 꿀을 채취하며 여자들은 먹을거리 식물을 채집해 서로 음식을 공유하지만 성별로 더 자주 먹는 음식의 종류에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육식과 채식을 더 잘 처리하는 장내 미생물의 구성 차이를 보여준다고 연구자들은 전했다. 즉, 수렵과 채집의 남녀 노동분업이 장내 미생물 구성의 차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슈노르 연구원은 보도자료에서 “이런 발견은 인류 진화 과정에서 장내 미생물이 다른 식이생활에 맞추는 적응의 파트너(adaptive partner)로서 중요한 구실을 했음을 뒷받침해준다”고 풀이했다.
연구팀이 제시하는 다른 특징은, 하드자 사람의 장내 미생물군집에서는 트레포네마 같은 병원성 미생물이 많이 발견되고 반면에 건강에 유익하다고 알려진 비피도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은 드물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하드자 사람들 사이에선 장내 미생물 불균형으로 생길 수 있는 자가면역 질환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팀은 ‘건강에 좋은(healthy) 미생물’과 ’건강에 안 좋은(unhealth) 미생물’이라는 개념도 인간이 사는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기에 개념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내 미생물의 유전적 다양성이야말로 건강에 가장 중요한 기준일 수 있다는 것이다.
논문의 책임저자(교신저자)인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아만다 헨리(Amanda Henry)는 보도자료에서 “공존하는 미생물군집은 우리가 서로 다른 생활방식과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우리의 오랜 친구들”이라며,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수렵채집 시대에 인류가 충분하지 않은 자연의 먹을거리에서 될수록 많은 영양분을 얻을 수 있게 도와준 적응의 협력자 구실을 했음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인간의 장내 미생물은 건강에 직접 영향을 끼치며, 서로 다른 생활방식에 적응하게 하는 또 하나의 수단을 제공한다. 장내 미생물의 변화를 탐구하고, 이 박테리아들이 어떻게 인간과 공진화를 했을지를 이해하고자, 이 논문에서 우리는 수렵채취 공동체인 탄자니아 하드자(Hadza) 사람들이 지닌 장내 미생물의 계통발생학적 다양성과 대사 산물을 조사했다. 우리는 하드자 사람들이 이탈리아 도시인 대조군과 비교해 미생물 풍요로움과 다양성에서 더 높은 수준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농업에 종사하는 두 곳의 아프리카 집단과 비교하는 연구에서는 수렵채집 생활방식과 연계될 수 있는 하드자 부락인만의 다른 특징들이 나타난다. 그런 특징으로는 비피도박테리아(Bifidobacterium)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남녀 간에 미생물 구성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남녀간 차이는 아마도 성별 노동분업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프레보텔라(Prevotella), 트레포네마(Treponema), 그리고 미분류 미생물들이 풍부하며 클로스트리디움 목(Clostridiales) 분류군이 독특한 구성을 이룬다는 점 덕분에, 하드자 사람들은 섬유성 식물 음식에서 귀중한 영양분을 소화하고 추출하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