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에 감기가 잘걸리는 이유
기온 낮아지면 인체 면역시스템 약해져 감염
중년 남성인 강모씨(56)는 추운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TV 광고가 있다. 눈이 내린 거리를 배경으로 여성 모델이 입에 손나팔을 한 채 “감기 조심하세요!”라고 외치던 감기약 광고다. 그 광고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강 씨는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체온 관리에 신경을 쓴다.
그런데 강 씨의 이런 행동에서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감기는 기온이 아닌 바이러스에 의해 유발되는 질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온이 내려가면 감기에 잘 걸린다고 생각한다. 감기와 기온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지난 수백 년 동안 우리의 부모들은 “날씨가 추우면 감기에 걸리기 쉬우니, 옷을 따뜻하게 입어라”라고 말씀해 왔다. 하지만 사실 그런 말씀의 과학적 근거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과학자들이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면 체온이 떨어지고, 면역시스템의 기능이 약화되므로 감기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주장해 주목을 끌고 있다.
감기의 원인은 기온이 아니라 면역력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사이언스데일리(Sciencedaily)는 미 예일대의 발표를 인용하여 겨울철에 감기에 잘 걸리는 이유는 약해진 면역력이 원인이라고 보도하면서, 추워지면 신체의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 바이러스가 침투하기 쉬운 체내 환경이 마련된다고 밝혔다.
예일대 연구진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은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면 체온이 떨어지면서 면역시스템의 기능이 약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게 되면 일반적인 코감기의 원인이 되는 리노바이러스(Rhinovirus)가 체내에 침투하기가 수월해진다.
이번 연구의 공동 책임자인 예일대 면역생물학과의 아키코 이와사키(Akiko Iwasaki) 교수는 “리노바이러스는 차가운 온도에서 자가 복제를 더 잘하는 성질이 있다”고 소개하며 “따라서 우리 몸속의 폐보다는 이보다 온도가 좀 낮은 코에서 바이러스가 더 쉽게 번식한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폐의 온도는 보통 약 37도 정도를 유지한다. 그러나 코와 기도의 온도는 들이쉬는 숨 때문에 외부 기온에 영향을 받아 대략 33도에서 35도 정도의 온도가 나타난다. 따라서 감기 바이러스는 좀 더 차가운 장소인 코 안에서 번식하게 된다.
이와사키 교수는 “이 같은 결과는 쥐의 기도 세포를 이용하여 온도 차이에 따른 바이러스 번식 실험을 통해 확보했다”고 밝히며 “다만 리노바이러스가 왜 차가운 온도를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예일대의 실험이 있기 전 웨일즈 소재의 카디프대 연구진이 이미 감기와 온도의 상관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재미있는 실험을 해보았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180명의 자원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20분간 씩 한쪽은 얼음물에 발을 담그게 했고, 나머지는 빈 그릇에 발을 올려 놓도록 했다.
그 결과 얼음물에 발을 담갔던 사람 중에서 29퍼센트(%)는 4~5일 간에 걸쳐 감기증상을 나타낸 데 반하여, 대조군에서는 9퍼센트만이 감기증상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한기를 느끼는 것부터 시작하여 감기를 유발하는 과정까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감기가 유행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경미하게 감염되어 있는 상태이지만 증상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한기를 느끼게 되면 코의 혈관이 수축되어 따뜻한 혈액이 코로 공급되는 것이 차단된다.
여기서 따뜻한 혈액은 감염을 퇴치하는 백혈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데, 몸이 차가워지면 이런 공급이 감소하게 된다. 따라서 코의 면역력이 약화되기 때문에, 바이러스의 힘이 강력해져서 감기에 걸리게 된다는 것이다.
카디프대 연구진의 한 관계자는 “감기에 걸린 사람들은 추위 때문에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하며 “그러나 사실은 오랫동안 코 안에서 잠복상태에 있던 바이러스가 코의 면역력이 떨어지는 것을 계기로 활동을 개시하면서 감기를 유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온도와 천식의 상관관계를 규명하기 위한 시도
예일대 연구진은 체내 온도와 바이러스 감염 간의 연관관계를 확인하기 위하여, 1차로 쥐의 세포를 온도가 서로 다른 두 공간에서 배양했다. 한 세포 그룹은 폐의 심부체온인 37도에서 배양했고, 또 다른 세포 그룹은 코의 온도와 비슷한 33도에서 배양했다.
그 결과, 온도 자체가 바이러스 번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 하지만 기온에 따라 바이러스에 대한 세포의 면역 반응에는 차이가 발생했다. 37도에서는 바이러스에 강한 면역 반응을 보인 반면, 33도에서는 면역 반응이 좀 더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1차 실험에서 온도와 면역반응 간의 관련성을 확인한 연구진은 인간의 세포를 대상으로 한 2차 연구에 돌입했다. 연구진은 인간의 기도세포를 추운 환경과 따뜻한 환경에서 배양하며, 리노바이러스에 노출시켰다.
2차 실험이 종료된 후 연구진은 따뜻한 환경에서 배양된 세포들이 추운 환경에서 배양된 세포들에 비해, 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자폭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파악했다. 여기서 자폭이란 프로그램화된 세포사멸(programmed cell death)을 뜻하는 것으로서, 감염이 전신에 전파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면역계가 내리는 ‘특단의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하여 이와사키 교수는 “온도가 낮아지면 세포 내의 면역시스템이 바이러스의 자기복제를 막는 방어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언급하며 “야외에서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게 되면 콧속 온도가 내려가게 되고, 이로 인해 바이러스의 복제 능력이 향상되면서 감기가 걸리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이번 연구는 조직 배양 접시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해야한다”고 전하며 “사람이나 동물을 직접 차가운 공기에 노출시켜 바이러스 감염 정도를 분석한 실험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이번 실험을 통해 추운 날 감기에 잘 걸리는 이유를 추측해볼 수는 있지만, 아직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리노바이러스는 종류만도 100가지가 넘고 감염경로도 조금씩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날이 추워지면 좁은 실내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는 환경 여건도 감기에 걸릴 확률을 높이는 원인일 수 있다.
한편 예일대 연구진은 이번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온도 및 어린이 천식과의 관련 정도를 규명해보려 하고 있다. 연구진의 한 관계자는 “감기는 어린이 천식환자에게는 심각한 호흡곤란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라고 경고하며 “앞으로 우리들은 리노바이러스에 의해 유도된 천식에 대한 면역반응을 조사하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 김준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