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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심각해지는 항생제 내성

등록자신○○

등록일2015-11-19

조회수208,273

점점 심각해지는 항생제 내성

 

항생제 남용이 만든 괴물수퍼박테리아 대재앙 한 해 1000만 명 숨진다


         중앙일보 | 이에스더 | 2015.11.19                    


정확히 35년 뒤인 2050년 11월 19일 새벽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실에 A씨(70)가 의식을 잃은 채로 이송됐다. 그는 지방의 한 요양병원에서 폐렴 증상으로 한 달 가까이 항생제 치료를 받았으나 차도가 없었다. 검사 결과 그는 모든 항생제에 견디는 수퍼박테리아(다제내성균)에 감염된 상태였다. 의료진은 A씨를 중환자실로 옮기고 몇 년 전 개발된 가장 강력한, 이른바 ‘4세대 항생제’를 투약했다. 하지만 A씨는 사흘 만에 사망했다. 보름 뒤 이 병원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거쳐간 환자 200여 명이 원인 불명의 폐렴 증상을 보이다 숨졌다. 모두 A씨처럼 어떤 항생제도 소용없었다. 이 환자들이 감염 상태에서 다닌 다른 대형병원과 요양병원 등에서도 감염자가 쏟아져 나왔다. 한 달 만에 수퍼박테리아에 의한 사망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

 

이런 끔찍한 상상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지난해 12월 영국 정부는 항생제 내성 보고서 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항생제 내성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2050년 한 해에 전 세계에서 1000만 명이 수퍼박테리아 감염으로 사망하고 이 때문에 연간 100조 달러(약 11경7220조원)의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구를 이끈 짐 오닐 영국 상원의원은 “제왕절개나 맹장 수술 같은 일반적인 수술은 물론 면역력이 떨어지는 항암 치료도 할 수 없게 되고, 별거 아닌 상처나 감기로도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 수퍼박테리아는 미래 인류에 지구온난화보다 더 큰 위협이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최근 항생제 내성 문제를 경고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마거릿 챈 WHO 사무총장은 지난 16일 “세계적인 항생제 내성균 확산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으며 21세기 공중보건에 가장 큰 위협이다”고 말했다.

 

수퍼박테리아는 항생제가 만드는 괴물이다. 엄중식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항생제를 쓰면 세균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세포벽을 두껍게 하거나 다른 모양으로 둔갑한다. 이 과정에서 세균은 항생제를 이겨낼 수 있는 힘, 즉 내성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균은 이렇게 만들어진 내성 유전자를 자기들끼리 주고받으며 확산시킨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여러 항생제에 내성을 갖게 된 세균이 생긴다. 이것이 수퍼박테리아다”고 설명했다.


 

수퍼박테리아 감염 사례는 국내에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질본)에 따르면 수퍼박테리아 감염은 2011년 2만2928건에서 지난해 3만8074건으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요양병원 등 노인요양시설을 수퍼박테리아의 온상으로 지목했다. 2005년 120곳이었던 요양병원은 지난해 1339곳으로 불어났다. 지난해 7월 국내의 한 요양시설에서는 집단 생활을 해온 노인 환자에게서 기존 항생제에 반응하지 않는 강력한 수퍼박테리아가 발견됐다. 이를 연구한 강철인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2011~2012년 우리 병원을 찾은 폐렴 환자 510명을 조사한 결과 5명에게서 ‘광범위 항생제 내성 폐렴구균’을 발견했다. 이들 환자는 폐렴구균 치료에 쓰이는 항생제 8종 가운데 반코마이신 등 두 가지 약으로만 약간의 치료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요양시설엔 폐렴에 걸리기 쉬운 노인들이 집단으로 모여 살아 서로 균을 옮길 가능성이 크다 ”고 설명했다.

 

요양시설만 문제는 아니다. 이재갑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수퍼박테리아가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이 대형병원 응급실·중환자실인데 우리나라 중환자실은 여럿이 한 병실을 쓰는 다인실이다. 이런 곳에 입원했다가 감염된 노인 환자가 요양시설로 옮겨가 다른 노인을 감염시키고, 상태가 다시 위중해져 중환자실로 이송돼 감염을 일으키는 식의 악순환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대부분 격벽으로 둘러쳐진 1인실 구조다. 우리나라에선 그런 시설을 갖춘 병원이 드물다. 요양병원은 더욱 그렇다. 전북의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상태가 나쁜 환자의 경우 간호사가 한눈에 보며 돌볼 수 있게 18인실에 입원시킨다. 한 방에 20명 이상을 넣는 병원도 흔하다”고 말했다. 감염관리 간호사나 감염관리실이 없는 요양병원도 많다. 이재갑 교수는 “요양시설에서 환자들이 서로 수퍼박테리아를 주고받아 대규모 감염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지만 실태조사조차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막으려면 병원 내 감염관리를 강화하고 항생제 남용을 막아야 한다. 엄중식 교수는 “병원 내 감염 예방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 요양병원이나 소규모 병원에도 감염관리실과 감염관리 전문 인력을 의무적으로 두게 하고 국가가 그 비용의 일부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도 줄여야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06년부터 전국 병·의원의 감기 환자에 대한 항생제 처방률을 공개하고 있다. 이전에 70~80%에 달했던 항생제 처방률이 지난해 40%대로 떨어졌다. 그런데도 감기 환자의 99%에게 항생제를 처방하는 동네 의원도 있다. 국립보건원 약제내성과 김화수 연구사는 “환자들도 의사에게 항생제 처방을 부탁하지 말고 한번 처방받은 항생제는 증상이 호전되더라도 끝까지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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