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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부족이 알려주는 장 건강 비결
야노마미족, 미생물군 다양성 가장 풍부해
인간의 위장관은 약 1000조 개의 미생물들이 거의 분 단위로 진화를 거듭하는 거대한 생태계 같은 곳이다. 자연 생태계에서 종의 다양성이 풍부하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하다는 증거가 된다. 위장관이라는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장내 미생물의 종 다양성이 높을 경우 항염증 작용과 인체에 도움이 되는 유기산이 많이 만들어진다. 반면에 장내 미생물의 종 다양성이 낮을 경우 비만과 염증 및 발암성 물질이 만들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우리가 식단 조절을 통해 건강이 개선되는 효과를 보는 것도 부분적으로는 장내 미생물의 종 다양성 회복 때문인 것으로 추정한다.
그럼 여기서 퀴즈 하나. 문명과 단절된 오지에서 수렵채취 생활을 하며 원시적인 식생활을 하는 부족민과 전 세계 각지에서 생산되는 갖가지 식재료를 활용해 풍성한 식단을 차릴 수 있는 글로벌 도시인 중 장내 미생물의 종 다양성이 더 풍부한 이는 어느 쪽일까?
이제까지 발표된 연구결과들에 의하면 정답은 원시 부족민이다. 산업화된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보다는 비산업화된 시골에서 사는 사람들, 또한 시골민보다는 문명과 단절된 채 수렵채취 생활을 하는 원시 부족민들일수록 종 다양성이 더 풍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인들의 종 다양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운동 부족 및 항생제의 잦은 사용 등과 같은 생활습관의 변화와 육류를 많이 섭취하고 채소를 덜 먹는 식습관의 변화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연구된 인간 중에서 가장 다양성이 풍부한 미생물군을 지닌 종족이 최근에 발견됐다. 베네수엘라 아마존의 오지에 살고 있는 ‘야노마미(Yanomami)’족이 바로 그 주인공. 야노마미족은 아마존 열대우림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를 형성하고 있는 부족 중 하나로서, 20세기 초까지 외부인들과 별다른 접촉 없이 살아 왔으며 지금도 자신들만의 언어와 관습을 지키고 있다.
항생제에 저항성 지닌 유전자도 포함돼 있어
미국 뉴욕대학의 연구진이 34명의 야노마미족으로부터 구강 및 배변, 피부샘플을 채취한 다음, 거기서 검출된 미생물 DNA를 분석한 결과 미국인보다 두 배 정도 많은 유전자가 검출된 것. 이는 남미 및 아프리카에서 조사된 다른 원주민의 것보다 더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야노마미족의 미생물군에는 항생제에 저항성을 지닌 유전자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1만여 년 동안 외부 세계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이들 부족에게서 어떻게 이러한 저항성이 생겼는지는 미스터리다.
이에 대해 일부 과학자들은 미생물이 인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접촉하므로 토양에 대한 노출이나 교역을 통해서 항생제에 저항성을 얻었을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이 연구결과는 온라인 국제학술지인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게재됐다.
이 같은 오지 부족민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장내 미생물의 유전적 다양성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국제 연구팀이 지난해 4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발표한 연구결과가 그 좋은 사례다.
연구진은 원시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탄자니아의 하드자 부락인과 이탈리아 도시인의 장내 미생물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하드자 부락인에게서는 트레포네마속 세균이 많이 발견된 반면 이탈리아 도시인에게서는 비피도박테리아가 상대적으로 많이 발견된 것.
트레포네마속 세균 중에는 매독균도 포함되어 있는 등 병원성 미생물이 많으며, 반대로 비피도박테리아는 건강에 유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하드자 부락인에게서는 장내 미생물 불균형으로 생길 수 있는 자가면역질환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당시 연구진은 장내 미생물의 개념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즉, 건강에 좋은 미생물과 건강에 좋지 않은 미생물이라는 기존의 개념도 인간이 사는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구석기 식단이 현대인에게 효과 없는 이유
이에 대한 수수께끼는 올해 3월 네이처 자매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게재된 다국적 연구진의 논문에 의해 좀 더 상세히 밝혀졌다. 연구진은 최신 시퀀싱 기법을 이용해 아마존강 상류 지역에서 수렵채취 생활을 하는 마티스 부족과 안데스산맥 고지대에서 농사를 짓는 투나푸고 부족, 미국 오클라호마주 노먼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대변에 존재하는 세균의 종류을 분석했다.
그 결과 마티스 부족과 투나푸고 부족의 위장관 세균 중에서는 지금껏 명명되지 않은 세균을 비롯해 산업사회 주민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다양한 트레포네마속 세균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연구진은 세균의 기능을 분석해 마티스 부족의 위장관에 서식하는 트레포네마균이 돼지의 위장관에 서식하는 트레포네마균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즉 트레포네마균은 돼지의 위장관에서 탄수화물을 소화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 특히 원시 부족들의 장내 미생물 중에는 소화하기 힘든 억센 섬유성 식물 음식을 처리하는 데 유용한 것이 많아, 그런 음식에서 가능한 한 많은 에너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은 요즘 건강 때문에 새삼스레 주목 받고 있는 수렵채취인의 구석기 식단이 현대인에게는 전혀 효과가 없다는 점을 암시한다. 구석기 식단을 모방해도 구석기인들의 위장관에 서식했던 미생물이 없다면 그걸 소화시킬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억센 섬유소의 섭취를 포기한 채 편식을 한다면 건강뿐 아니라 식습관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선호하는 영양성분이 각각 다른 미생물은 신호전달물질을 방출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성장에 가장 좋은 특정 영양분을 섭취하도록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떤 미생물은 당분을 섭취하도록 유도하며, 또 다른 미생물은 지방 함량이 높은 음식을 먹게끔 한다. 따라서 평소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경우 장내에 이를 먹고사는 미생물이 더욱 많아져 자꾸 지방 성분을 섭취하도록 유도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이젠 우리도 풍성한 식탁을 차리기보단 장내 미생물의 종을 더욱 다양하게 하는 식탁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 이성규 객원편집위원2noel@paran.com
- 저작권자 2015.05.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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